신들이 모이는 산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전통에 기반한 창작의 모순 혹은 오류

p.236.
전통예술 분야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전통에 기반한 창작이다. 그러나 이 말은 의미맥락이 성립되지 않는다. 근대국가 성립과 궤를 같이 하는 소위 국가적 발명품으로서 전통과 자유로운 창의성을 전제로 하는 창작은 서로 극단의 모순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권력화된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전통은 창작의 영역을 억압하거나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하며 때로는 창작과 전통은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창작은 전통을 극복하는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창작은 서구적 양식에 토대를 둔 작품 생산 행위에 해당하며, 전통의 고루함에 대비되는 당대성과 문명성과 진보성의 이미지까지 점령한 확보한 기표로 자리 잡는다. 이때 창작은 자기양식(전통적 양식)의 재창조가 아닌 서구 직수입품인 타자양식의 재창조에 해당하며, 타자양식 재창 조를 위해 자기 고유성의 재료적 활용을 의도한다는 점에서 전통기반 창작은 모순이자 자기부정이다. 게다가 좀 더 보편화시켜보면 어차피 창작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100% 순정품이 될 수 없고 어떤 식으 로든 기존(시대, 사회. 혹은 역사 등에 의해 설정된) 것에 토대를 둘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전통기반 창작은 자명성 오류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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