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이 모이는 산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임유영: 휴먼스케일

삼십이상(三十二相, 또는 三十二吉相)은 부처의 서른두 가지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1. 발바닥이 평평하고 반듯함.
  2. 발바닥 가운데 천 개의 수레바퀴 금(무늬)이 있음.
  3. 손가락·발가락 사이에 가죽이 이어져 기러기 발과 같음.
  4. 손·발의 보드라움이 도라면(兜羅綿)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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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치아 40개가 가지런하고 깨끗하고 촘촘함.
  6. 혀가 길고 넓어 귀밑까지의 얼굴을 다 덮음.
  7. 순수한 상품(上品)의 맛을 느낌.
  8. 낯이 보름달 같고 천제의 활 같음.
  9.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되 오른쪽으로 사리어 보드랍고 깨끗하고 광명이 빛남.
  10. 머리 정수리에 살이 튀어나와 머리가 족두리같이 높고 위가 평평함.

팔십종호(八十種好)는 32가지 특징을 세분하거나 새로운 특징을 추가해 80가지로 기술한 것이다. 팔십종호에는 ‘보는 이가 싫증을 느끼지 않음’과 ‘(사람의 눈으로) 다 볼 수는 없음’ 등이 포함된다. 삼십이상과 팔십종호의 내용은 전해지는 문헌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비슷하게 전해져 불상 제작의 규범이 되었다. 머리에 육계가 있고, 바른 자세를 하고, 눈썹 사이에 둥근 백호가 있고, 긴 손가락을 부드럽게 구부린 금빛의 좌상을 보면 우리는 그것이 부처임을 안다.

부처가 밝게 빛나고, 부드럽고, 성스럽고, 정결하고, 매끄럽고, 이가 많고, 목소리가 곱고,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한눈에 다 볼 수 없다는 점은 불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부처를 보았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은 더없이 완벽한,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갖춘 부처를 묘사하는 것이었다. 나는 늘 이 점을 신기하게 여겼다.


들쑥날쑥한 지형을 뚫고 자란 회색 나무와 마른 덤불 군락 아래로 겨울비를 맞아 축축해진 낙엽들이 쌓여있었다. 검은 흙도 축축했지만 질척거리지는 않았다. 죽은 나무와 검붉은 바위 위에 기이할 정도로 싱싱한 초록색의 이끼들이 얼룩처럼 넓게 번져 자라고 있었다. 먼 과거에 여기에 용암이 흘러들어와 모든 것을 불살랐다. 용암은 이곳에 고여 식어갔고 어느 순간 더는 한몸으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천천히 갈라지고 굳어지고 부서졌다. 용암이 고였던 자리는 움푹 파인 그릇처럼 되었다. 사람은 그 자리를 피해 살았다. 사람 아닌 것만이 무럭무럭 자라 숲을 이루었다. 가끔 사람들이 밤에 촛불을 가지고 숲속의 가장 짙은 어둠을 찾았다. 우리는 끊어지고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어둠을 찾아 헤맸다. 넓고 평평한 바윗돌이 바닥을 이루고, 거대한 선바위 몇 개가 벽을, 굵은 뿌리로 바위 머리를 붙잡은 크고 검은 나무가 지붕이 된 그 기도 자리를 찾아냈다.


그것은 사람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특정 곶자왈에 있는 너럭바위의 생태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있다는 믿음만으로 우리는 곶자왈로 무작정 떠난 것이다. 막상 너럭바위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그것을 어떻게 찾아내지? 우리는 선바위 틈의 울퉁불퉁한 구멍 속에서 굳은 촛농 자국을 발견했다. 자국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우리도 가방에서 초를 꺼내 불을 붙이고 바위틈에 촛농을 떨어트려 불을 고정했다. 다른 사람들이 흘려둔 촛농 덕에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 수대로 촛불을 붙이고 각자 자신이 올린 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무릎보호대나 방석을 준비해온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두꺼운 스웨터를 둘둘 감아 무릎을 받친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눈을 감고 그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과 같은 단 하나의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소원은 그것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기도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마지막 촛불이 꺼질 때까지. 다 타버린 심지와 흘러내리는 촛농.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
겨울밤 깊은 숲속.


우리의 기도가 밤까지 이어져 어느 정도 힘을 갖추자 선바위 틈 조밀한 어둠 속에서 부처가 나타났다. 부처는 신비로운 빛을 흘렸지만 그 빛이 어둠을 해치지 않았으며 말씀의 내용에 따라 형체가 무한히 커지거나 무한히 작아지기도 했으나 그 움직임에는 과장이나 모자람이 없었다.

물론 훌륭한 모습이었지만 우리는 결국 부처가 이곳에 왜 나타났는지 궁금해졌다. 우리의 의아함에 감응한 부처는 다시 한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눈앞의 너럭바위 위에 향기로운 발뒤꿈치―끝없이 연꽃이 피는―만 보일 정도의 크기가 되자 멈추었다.

부처는 저 하늘 높이서 출렁거리는 수천 개의 손가락 중 적당히 작은 엄지와 검지를 하늘하늘 움직여 이쪽으로 당겨왔다. 삽시간에 가까워진 두 손가락은 자신의 복숭아뼈를 쓰다듬는가 싶더니, 방향을 비틀어 가장 높은 선바위의 이마를 살짝 꼬집었다. 바위는 두부나 반죽처럼 순하게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꼬집힌 자리에는 두 개의 둥근 입구가 나란한 자그마한 동굴이 생겨났다.

부처가 수만 개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를 조금 기쁘게 할지도 몰라. 괜찮겠니?”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좋다.”

부처는 대답에 만족한 듯 모습을 감추었다.

부처가 떠난 후 우리는 무릎을 털고 자리를 정리했다. 우리가 느낀 안도감으로, 그것이 바위에 새로 생긴 터널 형태의 초소형 동굴 속에 옮겨졌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두 개의 검은 구멍. 이제 한동안 그것은 안전하다. 짐을 챙기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홀가분해 보였다. 나도 가방을 걸치고 일어섰다.

차가운, 아주 차가운 한 줄기의 바람이 가볍고도 냉정하게 내 왼뺨을 휙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흙냄새가 짙어지고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진동하더니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저 아래서 올라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그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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